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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를 막아서 만든 호수 시화호

    시화호는1994년 1월 24일에 태어났다. 사람의 나이로 치자면 올해 열 살이다.

    세상에 정식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태어나던 그때부터다.

    하지만 1986년부터 방조제 공사를 시작했으니 사람이 어머니 뱃속에 들어 있는 것에 빗대어 얘기하자면 한 20년쯤 세상맛을 본 셈이다.

    농사지을 땅을 만들고 담수호를 만들어 농업과 공업용수로 쓰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워 착공한 방조제 공사는 시작 단계에서부터 이런저런 논란에 휩싸였다.

    담수호, 그러니까 민물호수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네, 없네 하는 논란도 일었고 너무도 큰 바다를 막는 공사여서 공사 자체가 어려운 것 아니냐는 의문, 생태계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을 거라는 우려, 갯벌과 바다를 생활 터전으로 삼고 살던 주민들의 생계 대책 마련 등 여러가지 문젯거리가 많았던 것이다.

    그런 논란 속에서 10년 가까이 공사를 한 끝에 옛날 군자만이라고 부르던 바다와 갯벌은 시화호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시화호가 만들어진 뒤 생겨난 자연 생태계에 끼친 나쁜 영향을 빼고 보면 방조제 완공은 그 자체로 엄청난 대역사였다.

    죽어가는 시화에 쏠린 세상의 관심

    시화호는 태어난 지 1년쯤 되자 아프기 시작했다.

    바닷물의 드나듦이 막힌 상태에서 공단에서 나오는 폐수와 덜 정화된 생활오수가 유입돼 물이 썩어가 생물이 살 수 없는 호수가 돼 갔던 것이다.

    방조제 쪽의 물은 병들어 갔고, 물이 빠진 옛 갯벌의 조개류는 집단 폐사했고, 갯벌이던 상류 쪽 인근의 땅들은 소금기가 덜 빠져 바람이 센 날은 염분을 날려 보내 근처 농작물에 피해를 주기도 했다.

    물고기, 갑각류, 조개류도 새도 다 떠나가는, 생명이 없는 호수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때부터 세상은 시화호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언론이 환경 관련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시화호의 잘못된 생태를 알렸고, 주민들, 생태 관련 학자들, 환경운동가들, 수자원공사등이 지금의 시화호가 어떤 상태인지 따져보며 어찌하면 되살릴 수 있을 건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런 중에 죽어가는 호수의 물을 되살리는 길은 해수 유입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1997년 무렵 부분적으로 배수갑문을 통해 바닷물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바닷물이 들고나게 되자 시화호는 비로소 숨을 쉬기 시작했다.

    바다생물과 새와 식물과 함께 되살아난 시화호

    오염된 물 속에서도 목숨을 이어간 바다와 습지 생물들의 놀라운 생명력과 물이 빠진 갯벌에 스스로 돋아난 염생 식물들의 자생력, 염생 식물들이 자라면서 소금기가 어느 정도 걷히자 서서히 영토를 넓혀나가 자연정화조 노릇을 한 갈대나 억새 같은 육상 식물들의 번식력도 시화호 생태 복원에 한몫 단단히 했다.

    갯벌이 없어지고 물이 오염되자 떠나갔다가, 바닷물이 들어오고 생태가 어느 정도 복원되자 되돌아온 새들.

    세계적인 희귀조인 저어새, 노랑부리백로, 검은머리갈매기 같은 새들과 검은머리물떼새, 넓은부리도요새, 재두리미 같은 이제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없는 새들이 깃들면서 시화호는 세상으로부터 더욱 많은 관심을 이끌어 냈다.

    그밖에도 식물이살아난 시화 간척지에 나타난 산에 사는 새인 솔부엉이, 집 짓는 기술자 논병아리, 외래종 물고기인 블루길을 잡아먹는 덤불해오라기, 왜가리, 숱한 철새와 텃새들, 육상 동물인 너구리, 멧토끼, 멧돼지 같은 짐승들도 시화호를 보호하고 가꾸어 나가야 할 자연 생태 공간으로 인식되게 하는 데 크게 힘을 보탰다.

    『 시화호 사람들, 그 100인의 꿈』에서 발췌